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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3명, 저축의 날에 금융위원장 표창 받아

by BumPD 201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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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에서 저축왕이 되기까지

노숙인도 저축을 할 수 있을까? 흔히 노숙인 하면, 역 근처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다. 26일 저축의 날에 노숙인 3명이 금융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하루살기도 벅찬 이들이 저축이라니. 그러나 한편으론 저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싶다. 오늘, 희망의 곳간을 채워가는 3명의 사연을 들어본다.

 

동료들의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큰 위로가 됐어요 - 신경수(가명, 49) 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그 짧은 한 마디에서 신 씨의 굴곡진 과거가 묻어나왔다. 그의 삶은 군대 이후 많이 달라졌다. 의가사제대 이후 홍익대학교에 복학하고 취직도 했지만, 군대에서의 후유증 때문인지 정신과적 질환이 찾아왔다.

“보일러 회사 서비스 관리팀으로 일하게 됐는데, 두 달이 지나자 환청과 환시가 생겼어요. 정신병원에서 권하는 약도 먹어봤지만, 좀처럼 낫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2~3년 동안 정말 미친 사람처럼 살았어요.”

그는 더 이상 집안에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노숙인 쉼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입원됐다. 그렇게 한동안 노숙인 쉼터와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왔다.

“강원도 양구에서 노숙인이 참여하는 숲가꾸기 사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여하게 됐어요. 어려서 공부만 하고 군대 생활도 7개월밖에 하지 않아서, 노동이 쉽지만은 않았죠. 그래도 1년 동안 돈도 모으고, 일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큰형이 중풍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고, 그가 모은 1,000만 원을 아낌없이 내놨다. 그리고 다시 노숙인 보호센터에 들어갔다. 공원청소, 낙엽 줍기 등을 하며 그곳에 있는 동안 돈을 모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임대주택 생활은 월 50여만 원으로 생활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저축을 시작했어요. 직원 선생님의 위로와 동료들의 커피 한 잔이 제게 큰 위로가 됐어요.”

그의 바람은 정상인처럼 사는 것이다. 건강하게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가 받은 따뜻하고 고마운 것들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가족 앞에 당당하게 서 있을 자신을 꿈꾸며 - 오현석(가명, 53세) 씨

“어쩌다 보니 노숙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어요.” 오현석 씨는 군 제대 후 시작한 돼지농장에 실패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가지고 있는 땅을 정리해 빚을 갚은 후 1989년 무작정 일본으로 떠난 그는 건설일용직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온갖 고생 후 10년 만에 귀국했으나, 부인과의 성격차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1998년 이혼하고 말았다.

노숙인쉼터에 들어간 건 그 후 건설현장에서 잡부일을 하다, 1,000만 원가량의 빚을 지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동안 지친 탓인지 이런 생활은 저를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어요. 매일 술을 마시고, 술의 힘을 빌러 남들을 괴롭히고… 그렇게 살았죠.”

그러나 그가 꿈꿨던 건 가족 앞에 당당하게 서 있을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 하나를 꿈꾸며, 힘들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돈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다가왔다. 2009년 5월초 심혈관질환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던 것. 다행히 전에 가입해 놓은 보험이 있어 그 보험금으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아픔은 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병원에서 나온 이후, 그는 더욱 성실하게 일했다. 2010년에는 급여가 좀 더 나은 서울에코시티(재활용센터)로 직장을 옮겼다. 여기서, 월급의 130만 원 중 90만 원을 매월 저축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매월 일정액수를 저축하면 그만큼의 돈을 적립해 주는 '희망플러스통장'에 가입할 자격을 얻었다.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갑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정말 적지만, 가끔 이 돈이 ‘희망의 씨앗’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꿈꾸며 - 김형신(가명, 41세) 씨

2002년부터 노숙인 시설을 이용해 온 김형신 씨는 2008년 3월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에 입소하기까지 100만 원이상 저축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땐 삶의 비전이라던가 목표가 없었어요. 그러니 돈을 모을 이유도 없었죠. 그러다 희망플러스통장을 하면서 저축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는 2008년 저축왕 선발을 통해 희망플러스 통장 가입자격을 얻고, 2년간 성실하게 저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내년에 통장 만기가 되면, 1,440만 원의 돈을 받게 된다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그 돈으로 지금 사는 집을 전세로 바꿀 생각이에요.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니까요.”

그의 변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현재 보일러취급자격증, 방화관리사, 전기기능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얼마 전 임대주택 상담차 방문 약속을 잡던 사회복지사는 그가 공부하느라 11시 이후에나 시간이 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반은 농담으로 “얼마나 잘 살라고 이 늦은 시간까지 자격증 공부를 하냐? 나도 퇴근 좀 하자.”고 투정을 부렸다고.

앞으로 그의 꿈은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는 것이다. 꿈이 구체적이기 때문인지 그는 고단한 하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있을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문의 : 120다산콜센터 ☎ 120 / 자활지원과 ☎ 02-6360-4544 

*위 내용은 수상자 수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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