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쉰들러
1950년 12월 하순, 퇴각했던 북한은 인민군이 중공군의 도움으로 다시 남하한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서울은 다시 파란 행렬로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당시 미 제 5공군 군목이었던 러셀 브레이즈델 중령은 새벽마다 트럭을 몰고 거리로 나가 오갈 곳 없는 불쌍한 전쟁고아들을 수십 명씩 태웠다. 이렇게 해서 종로의 한 초등학교 건물에 수용된 아이들이 순식간에 천여 명을 헤아렸고, 이제는 이들을 안전한 제주도로 피난시키는 일이 남아 있었다.
당시 이기붕 서울 시장으로부터 인천항에 배를 대기시켜 놓겠다는 약속을 받고 트럭으로 10여 차례를 오가며 아이들을 인천으로 실어 날랐지만, 대기 중인 배는 시멘트를 가득 실은 낡은 것이어서 아이들을 태우기가 불가능했다. 브레이즈델 중령은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부근 학교 건물로 옮겨 놓은 뒤, 다시 서울에 주둔 중인 미 공군 본부로 갔다. 마지막까지 본부에 남아 있던 로러스 준장에게 처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호소하자, 준장은 "현재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C-54 비행단이 있으니, 아이들을 김포 비행기지까지 데려오기만 하라"고 했다.
워낙 비상시국이라 비행단이 다른 임무를 받고 출격해 버리면 다 헛일 이기에 어떻게든 빨리 아이들을 김포로 실어 와야 했는데 교통편이 문제였다. 그래서 인천항 부두에서 하역 중이던 해군의 군용 트럭 14대를 장교 휘장을 보여 주며 거의 강제로 빼앗아, 거기에 아이들을 나눠 싣고 미친 듯이 김포로 달렸다.
마침내 천여 명의 고아들은 16대의 비행기에 나눠 실렸고 천신만고 끝에 제주도에 안착했다.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으로 사회사업가 황온순 씨가 넘겨받아 한국 보육원을 세워 보살피게 된다. 브레이즈델 중령은 5개우러 뒤 일본 사령부로 발령받아 떠났는데, 1952년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옷, 식료품, 의약품 등을 가지고 제주도의 아이들을 찾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1년 1월 16일, 이제 91세의 노인이 된 브레이즈델 씨가 이제는 중년의 어른들이 된 당시 고아들의 초청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열렬한 환대에 어리둥절하여 눈을 끔벅이고 있던 이 한국판 '쉰들러'는 영화같았던 당시의 고아 구출에 대해서 간단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추위와 배고품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은 결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고아 수송 작전은 용기가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다 자기 목숨 챙기기에 바쁜 극단적인 전쟁 상황속에서 거리에 대책 없이 버려진 고아들을 살려 낸 브레이즈델 중령 같은 사람이 있어 세상을 살맛나게 한다. 초당 평균 4천 톤에 가까운 물을 떨어뜨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물의 입장에서 보면 절망이요, 죽음이다. 그러나 낙차가 크면 클수록 밑에선 엄청난 자연의 스펙터클이 펼쳐지고 천문학적인 에너지가 창출되면서, 물은 더 찬란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파격의 살신성인 리더쉽이 이 꽉 막힌 역사의 물고를 틀 것이다.
- [칼과 칼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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