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과 치매 사이, 당신은 어디에?
“자동차 열쇠를 어딘가 잘 두었는데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약속에 늦어버렸습니다. 치매 초기 단계가 아닌지 걱정입니다”, “예전에는 새 전화번호를 잘 암기했는데, 요즘엔 듣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네요. 치매 증상이 아닐까요?” 노령 인구가 증가하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중년 이후에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TV 드라마, 소설은 물론 실제 주변에서 치매로 고생하는 사람과 가족을 흔히 보게 되면서 이러한 염려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자주 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망증과 치매, 두 증상의 차이를 알아보고, 둘 사이에 존재하는 불안에서 벗어나 예방책에 관심을 갖자.
잊을 수 없는 사실을 잊다
단순 건망증과 치매 초기 증상을 구분하기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증상에는 몇 가지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잊어버린 것이 실제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가 하는 문제다. 열쇠 둔 곳을 잊는 것처럼 일회성 사실을 잊는 것은, 기억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개 집중력의 문제다. 우리 뇌는 기억을 저장할 당시 얼마나 집중해서 뇌에 등록했는가 하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잘 기억해낼 수 있느냐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자기 집 전화번호를 잊는 것은 치매의 초기 증상으로 의심해볼 수 있다. 이는 쉽게 잊기 어려운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치매 노인이 자녀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 치매란 ‘잊을 수 없는 사실을 잊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길을 잃는 현상도 치매 초기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치매에 대한 개념에 최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치매가 단순히 기억력 장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치매 환자는 기억력 저하 외에 언어나 행동의 실행 능력이 약해지는 현상을 동반한다. 일과를 계획하는 능력, 계획한 대로 실행하는 능력 모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결국 집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여 곤란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거나,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은 뇌의 행동 억제 능력이 약해져서 생기는 현상으로 치매 초기 증상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한다면 단순 건망증과 치매 초기 증상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노화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라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노환이나 치매 현상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의학과 생물학이 발달해 노인성 질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노환’이라는 용어가 점차 사라지고, 뇌혈관 질환, 심장혈관 질환, 심부전, 파킨슨씨병, 퇴행성 치매, 혈관성 치매 등 특정 퇴행성 질환을 미리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독립적인 질환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다른 질환의 위험 요소나 원인 질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뇌졸중 같은 뇌혈관 질환을 적절한 시기에 발견해 관리하지 않으면 혈관 손상이 진행된다. 혈관 손상이 방치되면 그 결과 치매나 파킨슨병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몸의 모든 곳에는 혈관을 통해 혈액이 적당히 공급되어야 한다. 뇌에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뇌혈관 질환에 의한 혈관 손상은 뇌 특정 부위에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혈관 질환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치매를 혈관성 치매라고 하는데, 여러 치매 중에서도 가장 큰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치매는 어쩔 수 없는 노환이 아니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퇴행성 질환들을 조기에 진단하고 예방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 평소에 건강을 해치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성인 질환과 종양에 대한 조기 진단 및 치료가 잘 이루어진다면 노년이 되어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노년을 ‘성공적인 노화(successful aging)’라고 한다. 성공적인 노화는 현대 의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치매와 각종 만성 질환의 조기 진단과 예방은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 후 90세 이후까지도 건강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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